
뜬금없이 커다란 옹기 항아리를 사버렸다
지난주 주말이었나, 갑자기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예전부터 눈독 들이던 옹기그릇을 덜컥 사버렸다. 사실 우리 집 부엌은 온통 깔끔한 화이트톤에 스테인리스 국자나 경질냄비 같은 현대적인 도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 와중에 묵직하고 투박한 갈색 옹기라니, 처음 물건을 받고 택배 박스를 뜯었을 때 든 생각은 ‘이걸 어디다 둬야 하지?’였다. 예전부터 이학수 옹기장 같은 분들이 만든 전통 방식의 그릇이 숨 쉬는 그릇이라 음식 보관에 좋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막상 우리 집 식탁 위에 올려두니 분위기가 너무 튄다. 5만 원 정도 주고 산 적당한 크기의 항아리인데, 고민 끝에 일단 싱크대 구석에 스마트화분 대신 오렌지자스민을 옮겨 심어서 올려두었다. 왠지 모르게 이게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기존의 살림 도구들과 섞이지 않는 불편함
옹기를 들여오고 나서 보니까 그동안 쓰던 나무쟁반이나 나무주걱 같은 자연 친화적인 소품들과는 그나마 괜찮은데, PC밧드에 재료를 소분해두는 습관과는 영 딴판이다. 원래는 플라스틱 밧드에 야채를 씻어서 넣어두거나 스테인리스 제품을 즐겨 썼다. 그런데 옹기그릇은 일단 무겁다. 무겁다는 건 세척할 때도 꽤나 성가시다는 뜻이다. 고창 마한 고분에서 출토된 옹기 조각 같은 건 멋있어 보이는데, 내가 매일 쓰는 살림살이로서는 살짝 묵직함이 부담스럽다. 설거지할 때마다 혹시나 싱크대 볼에 부딪혀서 이가 나갈까 봐 작업용 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다루게 된다. 이럴 거면 차라리 편하게 쓸 수 있는 경질냄비가 낫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숨 쉬는 그릇이라는 말의 무게
옹기장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라니 대단하긴 한데, 이게 현대의 아파트 부엌에서 과연 실용적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못 내렸다. 사실 간장을 담아두거나 된장을 보관하면 좋다는 말을 믿고 샀는데, 좁은 주방 공간에서 옹기 항아리는 생각보다 차지하는 면적이 넓다. 처음엔 멋모르고 식탁 중앙에 두었다가 며칠 지나고 나서는 괜히 식탁 공간만 좁아지는 것 같아서 베란다 쪽으로 옮겼다. 식물을 심어놓으니 나쁘지는 않은데, 당초 목적이었던 음식 보관은 거의 포기 상태다. 숨을 쉰다는 그 특유의 성질 때문인지, 안에 뭘 넣어두면 왠지 자주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이 있다.
정리되지 않는 주방 풍경
스테인리스 국자나 각종 조리도구들은 걸어두면 그만인데, 옹기는 따로 지정석이 필요하다. 옹기를 배치하려고 기존에 있던 나무쟁반 위치를 옮기고 나니, 원래 거실 분위기와도 살짝 따로 노는 기분이다. 혹시나 해서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질까 싶어 일단은 그냥 두고 있는데, 왠지 시간이 지날수록 옹기보다는 좀 더 가벼운 스테인리스 용기에 손이 더 자주 간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결국 식물 화분이 되어버린 게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옹기 그 특유의 흙 냄새가 섞인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또 그냥 두게 된다. 이게 옹기의 매력인가 싶으면서도, 효율적인 주방 살림을 생각하면 매번 갈등이 생긴다.
결론이 나지 않는 물건과의 동거
옹기를 쓰고 나서 무엇이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더 불편해졌고, 관리할 것도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를 밖으로 내다 버리거나 당근마켓에 올릴 생각을 딱히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도 의아하다. 아마도 단순히 그릇을 산 게 아니라, 아주 조금은 전통적인 무언가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게 아닐까. 조만간 된장이라도 담가서 넣어볼까 싶다가도, 또 잘못 관리해서 곰팡이라도 필까 봐 겁이 난다. 오늘도 옹기 옆을 지나며 한번 슥 쓰다듬어 보는데, 여전히 우리 집 부엌과는 조금 겉도는 느낌이다. 이 어색한 동거가 언제까지 갈지 잘 모르겠다.
오렌지자스민과 함께 심으니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네요. 흙 냄새도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답글
옹기 옆에 쟁반을 놓으니 더 이상 거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네요. 왠지 흙 냄새가 계속 생각나서 옹기를 계속 들고 다닐 것 같아요.
답글
무거운 옹기 때문에 설거지 스트레스 받는 것 같네요. 저는 재료를 담는 용도로만 활용하는 편이에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