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은한 노란빛에 끌려 놋그릇 세트를 덜컥 들여놓게 된 계기
지난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인사동 근처에 있는 한정식집에 갔었는데, 거기서 밥이 무겁고 노르스름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음식이 유난히 정갈해 보이고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 집에서 대충 쓰던 가벼운 코렐 접시나 스텐 밥공기가 문득 너무 성의 없게 느껴졌다. 나도 집에서 저런 그릇에 밥을 담아 먹으면 매일 대단한 밥상을 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특유의 묵직함과 따뜻해 보이는 노란빛이 계속 어른거렸다. 결국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져가며 놋그릇세트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관리하기 까다롭다는 후기가 군데군데 보였지만, 그때는 그런 경고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밥상을 예쁘게 차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생각보다 묵직했던 택배 상자와 첫 세척의 번거로움
고민 끝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2인 기준의 방짜유기그릇 세트를 주문했다. 가격은 대략 18만 원 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작은 찬기 몇 개가 포함된 구성이었다. 택배 상자가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상자를 열어 하나씩 꺼내는데 번쩍번쩍하는 노란빛이 마음에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매일 닦을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동봉된 설명서에는 첫 사용 전에 식초를 섞은 미지근한 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두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야 유기 특유의 쇳내도 빠지고 그릇 표면에 산화 피막이 형성되어 얼룩이 덜 생긴다고 했다. 싱크대에 큼직한 대야를 꺼내 물을 받고 식초를 들이부은 뒤 그릇들을 담가두는데, 밥 한 끼 먹기 전부터 이 무슨 번거로운 일인가 싶어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한 시간 뒤에 물에서 건져내어 부드러운 수세미로 하나하나 닦아내는데 벌써 손목이 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밥알이 굳어 달라붙을 때마다 밀려오는 설거지의 압박
본격적으로 밥을 담아 먹기 시작하면서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기그릇은 온기를 오래 유지해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밥알이 그릇 표면에 찰떡같이 달라붙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물에 담가두지 않으면 밥알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데, 이걸 떼어내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일반 세라믹 그릇이나 멜라민 식기 같으면 초록색 철수세미나 거친 수세미로 슥슥 문지르면 그만일 텐데, 방짜유기는 미세한 스크래치에 약하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물에 한참 불린 다음에 부드러운 미세모 수세미나 스펀지로 살살 달래가며 닦아야 했다. 퇴근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설거지통을 바라볼 때마다, 이 놋그릇 하나 때문에 설거지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물 얼룩과 푸르스름한 변색을 마주하며 알게 된 까다로운 관리법
설거지를 끝내고 식기건조대에 여느 그릇처럼 엎어놓고 자연 건조를 시켰더니, 다음 날 그릇 표면에 얼룩덜룩한 물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얼룩덜룩해진 놋그릇은 고급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지저분해 보였다. 찾아보니 유기는 설거지 직후에 마른행주로 즉시 물기를 닦아서 보관해야 얼룩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삼시 세끼 먹을 때마다 그릇 물기를 손수 닦아내야 한다니, 현대식 주방 라이프와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한 번은 초간장을 담아두었다가 깜빡하고 다음 날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간장이 닿았던 자리가 푸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식초나 염분이 강한 음식을 담아두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 변색이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전용 루즈나 초록 수세미로 한 방향으로 문질러 닦아야 겨우 원래 빛깔로 돌아온다는데, 그 짓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결국 찬장 깊은 곳으로 밀려나고 가끔만 꺼내게 되는 현실
그렇게 3개월 정도 억지로 사용하다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가볍고 편한 티타늄접시나 일반 자기 그릇들로 손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유기그릇은 점점 식기건조대에서 밀려나더니, 이제는 싱크대 상부장 가장 깊숙하고 꺼내기 힘든 자리에 박혀 있다. 손님이 오거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나 한 번 꺼낼까 말까 한 처지가 된 것이다. 애초에 내가 너무 관리를 쉽게 생각하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가끔 찬장을 열어 먼지가 살짝 앉은 유기그릇을 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든다. 버리자니 아깝고, 매일 쓰자니 내 손목과 인내심이 버티지 못할 걸 알기에 그냥 그대로 두고만 있다. 관리할 자신도 없으면서 겉멋만 들어서 샀던 물건 중 가장 후회스러운 지출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예뻐서 샀는데, 물기 닦자마자 변색이 너무 빨리 되더라고요.
답글
정말 공감했어요. 집에서 쓰는 접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서, 처음에는 밥상 자체가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답글
유기그릇이 점점 덜 쓰이게 된 과정이 딱 내 이야기 같아요. 예쁜 그릇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던 것 같아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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