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심을 굳힌 건 아니었고, 그냥 한 번 가볼까? 싶었던 황학동 주방 거리를 주말에 다녀왔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업소용 중고 주방용품이랑 가구 같은 걸 많이 판다고 해서, 혹시 쓸만한 의자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희미한 기대를 품고.
가보니 정말 말 그대로 정신없더라. 쌓여있는 접시, 냄비, 칼, 뭐 그런 것들 말고도 진짜 크고 작은 업소용 기계들이며, 낡은 테이블, 의자들이 잔뜩 있었다. 냄새도 좀 뭐랄까, 오래된 기름 냄새랑 쇠 냄새 같은 게 섞여서 코를 찌르는데, 이걸 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지.
원래 목적은 업소용 의자였다. 튼튼하고, 좀 오래 써도 티 안 나는 그런 걸 원했는데, 보다 보니 눈이 돌아가는 거야. 식당에서나 볼 법한 녹슨 철제 의자부터, 푹신해 보이는데 천이 다 해진 것들, 플라스틱인데 금이 간 것까지 종류는 엄청 많았는데,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가격을 물어보면 사장님마다 다르고,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분은 만원이라고 했다가, 어떤 분은 5천원이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2만원 부르기도 하고. 일관성이 없어서 좀 피곤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뜬금없이 큼지막한 스테인리스 냄비였다. 아마 가정집에서는 거의 안 쓸 법한 사이즈인데, 묵직한 게 왠지 모르게 퀄리티가 좋아 보이는 거다. 저건 무슨 요리를 할 때 쓰는 걸까? 곰탕이라도 잔뜩 끓일 때 쓰는 건가?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저거 얼마냐고, 탕집 할 건데 하나 사 간다고 하더라. 순간 좀 흔들렸다. ‘나도 저런 걸 살까?’ 싶다가도, 우리 집 부엌에 이걸 어디다 두지 싶어서 바로 접었다. 저런 걸 사려면 황학동뿐만 아니라 뭐 충주나 안성 쪽에도 중고 주방용품 단지가 있나 한번 찾아볼까 하다가도, 그냥….
돌아다니다 보니 낡은 간판이랑 그릇들도 눈에 띄었다. 오래된 식당에서 쓰던 것 같은 그런 것들. 디자인이 독특한 것도 있고, 누가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러다 누가 봐도 80년대 느낌 물씬 나는 플라스틱 접시 세트를 봤는데, 색깔이 내가 어릴 때 봤던 만화 캐릭터 색깔이랑 비슷한 거야. 순간 옛날 생각나서, 저거라도 하나 사갈까 싶었는데, 같이 간 친구가 ‘너 이거 사서 뭐하게?’ 하길래 또 멈칫했다. 집에는 이미 접시가 넘쳐나는데.
결국 황학동 주방 거리를 2시간 넘게 돌아다녔는데, 업소용 의자는 하나도 못 건지고, 엉뚱하게 오래된 접시나 냄비만 눈에 아른거리다가 그냥 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한테 “결국 빈손이네” 했더니, “시간만 버린 거 아니냐”고 하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그냥 멍하니 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뭘 살지 미리 좀 정하고 가야겠다. 아니면 그냥 구경만 하는 걸로. 아니면, 대전 중고 가구 매장 같은 데나 한번 가볼까 싶기도 하고. 요즘은 당근마켓 같은 데서도 중고 주방용품 많이 나오던데, 거기서 찾아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고. 모르겠다. 일단은 피곤해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싶다. 다음에 청주 쪽 중고 냉난방기 매장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너무 멀다.
접시 색깔이 만화랑 비슷하다니, 정말 흥미로운 발견이네요. 제가 어릴 때도 비슷한 색깔의 접시를 엄청 썼었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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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색깔이랑 어린 시절 만화랑 비슷하다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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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종류 진짜 많더라구요. 냄비는 아저씨가 가져가시는 게 다행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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